홍철기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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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철기 일지 http://www.hongchulki.com/; hongchulki at gmail dot com
by sonicluv


110102 일지

"나는 근본(radix), 즉 세계의 궁극의 뿌리나 궁극의 표면이 없는 철학, 그래서 대상(object)이 자신의 특징들로부터 두 가지 상반된 방향으로 갈기갈기[정반대로] 찢긴 양극화된(polarized) 철학을 제안한다. 우리는 급진주의에 반대해야 하는데, 냉철한 중용의 이름(그 경우에는 다른 진로 선택이 철학보다는 현명한 것이리라)에서가 아니라 기괴함(weirdness)의 이름에서 그렇게 해야 한다. 급진 철학은 충분히 기괴하지 않으며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실체 안에 내장된 기본적인 모호함에 결코 충분히 집중하지 않았다. 급진 철학들은 모두 본질적으로 환원주의적이다. 그러한 철학들이 인간이 접근할 수 있도록 상향으로 환원하든, 아니면 보다 근본적인 층위로 하향 환원을 하든, 그들 모두는 실재(reality)의 절반이 다른 절반에 의해 생성된 환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대상들은 반대로 양극화, 애매함, 혹은 기괴함의 장소이다. 한편으로 대상들은 그들을 유형화하는 모든 특징들과 관계들로부터 자율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대상들은 완전히 자율적이지는 않은데, 만일 그랬더라면 우리는 기회원인론적 신도 다시 통합할 수 없는 완전히 단절된 지대들의 다원적 우주(multiverse)를 갖게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대상들, 그들의 성질들, 사건들, 관계들, 계기들 사이의 차이를 설명해야 하는데, 대상들을 이들 중 어느 것을 환원함으로써 우리의 작업을 과도하게 단순화시켜서는 안 된다. 모든 이러한 용어들은 대상들이 속하는 통일된 대상들과의 불화 속에서만 오직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Graham Harman, "On the Undermining of Objects: Grant, Bruno, and Radical Philosophy," The Speculative Turn: Continental Materialism and Realism, Levi Bryant, Nick Srnicek and Graham Harman (eds.) (Melbourne: re.press, 2011), p. 24.

그리고 정치적 인식론 논쟁의 고전이 되어버린 그 장면, 이미 측정된 위험(risk)와 그렇지 않은 불확실성(uncertainty)이 분기되는 지점. 그러나 물론 보수주의자가 1차원적인 얼치기처럼 불확실성은 존재하지 않고 이미 알려진 위험만 존재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진지하게 인정하는 순간, 불확실성은 이제 단순한 위험보다 훨씬 더 크고 규정할 수 없는 악의 근원이 될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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