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철기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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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철기 일지 http://www.hongchulki.com/; hongchulki at gmail dot com
by sonicluv


100707

"i) '음악'의 너머, 그것은 노이즈다. ii) '규칙'의 너머, 그것은 자유다." (p. 21)

"스스로 자신이 만들 음악의 종류뿐만 아니라 그 음악을 만들고 실제로 정의하는 행위 모두의 기준이 되는 규칙을 결정하는 일은 급진적인 자기결정권의 실천이다. 그것은 자유의 영역으로의 도약이다." (p. 31)

"즉흥사운드 아티스트로서 나는 최근 한 프랑스 잡지와 인터뷰에서 왜 기타 연주같은 구닥다리 것들에 매달려 있는지, 왜 내가 '내 활동을 급진화'해서 샘플러 같은 것을 쓰지 않았지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나는 내 분노를 조절하고 예의바르게 신기술이 음악의 악기들을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만든다는 생각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런 생각을 따르지 않는다." (p. 61)

최근 입수한 책에 관련된 이야기. 북소사이어티 덕분에 입수하게 된 책인데 바로 Bruce Russell, Left-Handed Blows: Writing on Sound 1993-2009 (Newton: Clouds, 2009)이다. 내가 뉴질랜드 언더그라운드 락씬의 주요 밴드 중 하나인 The Dead C의 기타리스트이자 사운드 아티스트, 그리고 저술가이기도 한 Bruce Russell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Drag City에서 CD로 재발매한 뉴질랜드 인디 레이블 Xpressway의 컴필레이션 Making Losers Happy: Xpressway NZ Singles 1988-91를 통해서 였다(아마도 내 수중에 들어온건 99년이나 2000년 근처였던 것 같은데). 한참 J모양의 자취방에 당시 핵심멤버 친구들이 모여서 술먹고 쓰러지면 다음날 오후에야 좀비들처럼 부시시 일어나서 집으로 뿔뿔이 흩어지던 시절이었는데, 특히 이 컴필레이션에서는 이미 정상적인 락밴드라면 연주할 것 같지 않을 반복적인 노이즈 기타(소닉유스보다는 단조롭고 MBV와 비교하기에는 훨씬 lo-fi취향에, 듣는 사람을 답답하게 하는 질감이다)를 전면에 내세운 Dead C(당시 컴필에 실린 "Angel"을 듣고 곧바로 그들의 Trapdoor Fucking Exit을 샀었다)와 David Mitchell 등의 곡이 기억에 남는다. 여튼 이런 노이즈 기타/락 밴드에 대해서는 (slowcore 뮤지션들에 대해서만큼이나) 새로 접하게 될 때마다 환장을 하고 즉시 구입을 추진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The Dead C의 TV출연 동영상

그런데 불행히도 Dead C와 Bruce Russell은 잠깐동안 잊고 있던 이름이 되었다. 노이즈 음악을 하는 것에서 오는 고립감이랄까, 당시에 노이즈를 슈게이징이나 슬로코어로 위장하는 것이 별로 성공적이지 않았는지 나는 여전히 이상한 음악같지도 않은 음악을 하면서 주위에 소수의 훌륭한 뮤지션들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드러내놓고 그 부분을 지적하는 녀석들도 주위에 있었다). 그리고 2002년경에 아주 가끔씩만 모여서 연주를 하던 puredigitalsilence의 완전한 와해상태가 오면서 찾아온 일종의 좌절을 기존의 노이즈락 등의 형태들을 (좀 더 부정적인 의미의) 타협이라고 간주하고 보다 순수하게 노이즈와 즉흥(아직은 이 이름을 알지는 못했다)에만 전념하게 되는 방향을 풀어버린 것이다. 결국 인디락과 노이즈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고 생각되는 음악을 스스로 멀리하게 되었고 Dead C도 일단은 거기에 끼어있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난 후에 알고보니 Bruce Russell이라는 작자가 꽤 오랬동안 이 양다리를 창초적이고 생산적인 방식으로 걸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그냥 양다리가 아니라 양쪽을 꽤 재미나게 오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서울에도 왔었던 Mattin등의 노이즈/즉흥의 급진주의자들 틈에서 그 이름을 발견한 것이다. 심지어 그는 자기는 밴드에서 기타를 치지만 (사실은 기타노이즈를 만들지만) 뮤지션은 아니고 사운드 아티스트라고 소개한다. 호주나 뉴질랜드에서 급진적인 실험음악가들이 스스로 사운드 아티스트라고 칭하는 것 같다. 이는 얼마전 서울에 머물렀던 호주 언더그라운드 실험음악 씬의 대부인 Robbie Avenaim과의 대화에서도 느낀 점인데, 그는 자주 새로운 언더그라운드 실험음악을 사운드 아트라고 불렀다. 마찬가지로  Bruce Russell은 자신의 활동을 improvised music이 아닌 improvised sound라고 소개한다. 대학과의 연계(마찰이나 갈등, 하시가 아닌)가 잘 되어 있어서 그런 점도 있는 것 같고 (현대)음악이 아카데미에서 지니는 위상과도 관련이 있는 현상인 것 같다. 한국에서 사운드 아티스트란 말의 뉘앙스는 극단적이고 급진적인, 어이없는 시도는 일단 하지 않고 무엇인가 일상의 '소소함'(내가 굉장히 편견을 갖고 싫어하는 말인데)을 랩탑과 super collider나 max/msp를 통해  도시적인 정서로 점잖게 표현해야만 할 것 같은 간질간질한 느낌이다. 예의없는 짓은 절대 할 것 같지 않은. 그렇게 본다면 말의 느낌이 매우 다르다. 실제로 한국에서 사운드를 매체로 삼아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가해지는 모종의 문화적/사회적 요구와 압력의 성격이 이러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갖고 있다는 이야가다. 생각해보라, 사운드 아티스트 Bruce Russell이 말하는 저런 말들이 과연 한국의 사운드 아티스트에게서 나올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을까? 기타를 치고 테이프 딜레이를 조작하면서도 계몽된 언어로 그것이 음악이 아니라 사운드아트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그리고 그만큼 기타의 사운드적 측면에 집착에 가까운 끈질긴 집중을 하는) 입장을 내세운다는 것이 과연 우리 풍토에서 얼마나 가능할까? ('기타를 치는데 그게 컴퓨터로 프로세싱이 되니까 사운드아트기도 하죠 뭐' 이런 언어가 아니라.)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직접 조금 들어보시라.

Bruce Russell의 "페챠...뉴질랜드에서의 프리젠테이션'

('폐차...'에 관해서는 다들 아시리라 믿는데, 그래도 그에 관한 류모씨의 포스팅을 보시길 바란다. 포스팅에 링크되어 있는 윤성호 감독의 에피소드도 꼭 확인하기실 바라고.)

그래서 점점 이야기가 산으로 가고 있는데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오면 맑스, 기 드보르, 비트겐슈타인(그리고 모든 21세기 문화급진주의자들의 연인인 벤야민까지)의 철학이 어떻게 즉흥음악, 노이즈, 사운드 아트의 급진적인 부분과 만나는지 확인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책 전체가 100페이지 남짓이고 글도 길지 않아서 심심할 때마다 한 편씩 읽어보기에 적합하다. 그러나 아마 기대 이상으로 철학적 깊이가 있는 아포리즘들이 매우 일반적인 아티스트로서의 활동에 관한 글들(예를 들어 왜 녹음을 하고 음반을 내는가에 관한 글들) 사이사이에 포진하고 있다는 점은 읽는 사람에 따라 어려움일수도 있고 즐거움일수도 있다. 참고로 Bruce Russell 본인은 이러한 점을 스스로 '쓸모없는 박학다식(vain erudition)'이라고 규정하는 것 같다. 그가 연루되어 있는 잡지의 제목인 것도 같고.

책은 곧 북소사이어티에 입고될 예정이라고 한다.

어떤 식의 글인지 궁금한 사람들은 저자의 유명한 글인 "What is Free?: a Free Noise Manifesto"를, 그리고  Mattin 등이 집필하고 편집한 Noise & Capitalism에 실린 글을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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