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사이에 여러가지 일이 있었으니 이 점은 조만간 정리하려 한다. 아니 정리하고 있는데 정리가 되는대로 업데이트를 하려 한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책이 한 권 나왔다. <현대정치철학의 모험>이라는 제목으로 클로드 르포르, 알랭 바디우, 자크 랑시에르, 가라타니 고진, 에티엔 발리바르, 조르조 아감벤, 샹탈 무페, 악셀 호네트 등의 정치사상가의 사상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한 글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나는 샹탈 무페에 관한 장을 썼다). 정말 완전히 뒷북인 것을 전제로 하면 <탈정치화 시대의 정치철학>같은 제목이 더 어울릴 뻔했다. 나도 책을 출판사에서 받아보고 들춰 보다가 며칠 전에 떠오른 제목이다. 이미 나온 서평을 읽어보니 이러한 시도를 여전히 탈근대/탈구조주의 이론의 유행의 끝물로 보는 시각이 존재하는 것 같다. 아마도 이러한 시각에 정면으로 대응할 수 있는 어떤 제목/기획이 필요했던 것이 아닌가하는 뒷북/반성의 결과이기도 하다. 미리미리 편집자님께 이런 이야기를 해볼 것을. 사실 나도 전혀 할 말이 없는 것이 기획자의 서문을 읽을 때만 해도 참 잘 썼었다고만 생각했다. 물론 잘 쓴 서문이지만 아마도 전체적인 기획의 초점을 이런 식으로 맞춰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일이 다 마무리 된 다음에 떠오른다. 그러는 사이 정작 핵심은 정치적 반대자들을 강도로 몰아버린 청와대의 극히 정치적인 단어 사용인 이른바 '강도론' 논쟁이 청와대와 박근혜 진영 사이의 강한 언쟁 쯤으로 일단락 되는 분위기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대통령이라는 자는 자신의 행위는 정치가 아닌 다른 어떤 더 좋은 것이며 정치는 마치 사라져버려야 할 어떤 것인양 계속해서 떠들고 있다. 진중권씨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사실 심형래가 아닌 이명박에게 들이대야할 어떤 것인지도 모르겠다. 정치라는 본성 때문에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은 교과서에도 지겹게 나올텐데, 이것이 만일 사실이라면 우리는 (진화의 결과인지 창조/지적 설계의 결과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의 본성, 우리를 동물과 구분시켜주는 특징을 아예 포기하거나 그것을 파괴하도록 일개 정권에게서 강요를 당하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란 정치 공동체의 실존에 관한 결정이자 그 실존에 대한 약속이기도 하다. 다른 합리성의 영역들은 공동체에 대한 예측을 할 수 있지만 결코 그 실존과 운명에 대한 약속은 하지 못한다. 정치가 없어져 버리면 인간 공동체는 정치공동체에서 벌집과 같은 동물의 조직/사회와 다를 바 없게 될 것이다. 게다가 그러한 정치적 결정과 약속은 사실 간단하게 경제적, 법적, 윤리적으로 판단을 내리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정치란 인간 사회에서 그렇게 간단하게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결코 동의할 수는 없지만 박정희, 전두환 (혹은 김일성, 김정일까지도) 민족, 혹은 국민의 영도자/예언자라고 믿는 서로 다른 편(친구와 적)의 사람들이 생기는 것도 바로 정치의 필연적인 속성이다. 이 정부의 수사들을 보면 '국민과 국가을 위해서'라든가, 혹은 '백년대계'와 같은 사실은 가장 정치적인 수사들을 만을 쓰고 있다. 정책의 정당성을 뒷받침할만한 통계치는 부실한 것 투성이며 자신들에게 불리한 법적 판단은 아예 언급/논평 조차하지 않는다. 모든 정부기관과 조직은 정권의 정책홍보를 위한 수단으로 복무한다. 곧 모든 행동이 정치적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것이 정치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결국 반대자들에게서는 정치의 자격을 빼았고 자신들만이 그 자격을 독점하겠다는 매우 뻔한 속셈을 드러낼 뿐이다. <현대정치철학의 모험>은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도움을 줄지도 모를 정치철학자들(그들의 공통적인 고민의 시작이 된 것도 바로 이와 같은 동일한 상황이다)에 관한 책이다(노골적인 책광고...).
"반대자를 정치적이라고 규정하면서 자신을 비정치적(여기서는 즉 과학적이거나, 옳다거나, 객관적이라거나 당파적이지 않다는 등)이라고 지칭하는 일은 정치를 수행하는 전형적이면서도 특히 강도 높은 방식이자 방법이다." 칼 슈미트, <정치적인 것의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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