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7월 22일
090722
우파의 "국가" 타령만큼이나 공허하기 짝이 없는 것이 좌파의 "대중" 타령이다. 나는 내가 좌파에 속한다고 보기 때문에 (설사 누가 정말로 끼워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단순히 양비론을 제기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물론 국가도 중요하고 대중도 중요하다. 더 강조해서 무엇하겠나. 그러나 우파의 국가 타령이 국가에 대한 진정한 고민의 발로라기보다는 반대파를 반국가단체 쯤으로 몰아버리기 위한 정치적 무기인 것과 마찬가지로 좌파의 대중도 어느새 그런 "대중"의 기의와는 상관없는 정말로 공허한 기표뿐인 어떤 것이 되지 않았나 하는 인상을 지워버릴 수 없다. 당연히 대중을 내세우는 모든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무엇보다도 문화/예술 분야에 한정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대중음악, 영화의 대중성 등. 이때 대중은 무엇인가 좋고 (혹은 좋아야하고) 소통이 가능하며 보편적이며 평균적인 집단이다. 그리고 이 대중이라는 덫에 걸려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이 바로 한국의 독립예술의 현실이다. 영화관련 종사자인 한 지인과 대화하다가 나온 이야기인데, 현재 한국 독립영화의 문제점은 독립영화 자체가 장르가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관객층을 확보하기보다는 관객층을 더 이상 확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독립영화의 내부에 다양한 장르영화들이 존재하고 발전해야 그 장르영화를 보려는 관객층을 확보할텐데, 그리고 그렇게하여 독립 장르영화의 재생산이 가능할텐데, (내가 해석을 하자면) 뭔가 보편적인 정서와 관련된 '독립영화'만을 만들어내다보니 (혹은 다른 장르영화 성격의 영화들도 그렇게 분류되다보니) 그와 같은 취향의 양심적인(?) 관객들에게만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디음악도 별반 상황이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프레시안에 올라온 서태지와 장기하를 비교하는 글의 제목만 보고 떠오른 생각은 좀 치사하지 않냐는 것이었다. 물론 글의 내용은 양자가 대중음악의 틀안에서 공존을 했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는 (내가 서태지는 물론이거니와 장기하의 음악에도 전혀 관심이 가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부당한 비교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완전히 메이저 그룹이 된 너바나나 펄잼은 장르와 상관없이 다른 메이저 레코드사의 뮤지션과 비교해야 한다. 그들이 가장 히트를 쳤을때 누가 같이 차트에 있었지 기억을 하지 못하므로 패스. 근데 아직도 대중성을 운운하면서 너바나를 페이브먼트나 멜빈스쯤과 비교하면서 (아직도 예가 적절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둘이 공존하는 대중음악이 존재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비교는 자유다. 하지만 이러한 대중성은 개별 음악가들에게는 당연히 추구할 가치가 될 수 있다(반대로 비대중성, 혹은 반대중성을 추구할 자유도 있는 것이지만 반대중적 대중성이라는 되지도 않는 변증법은 이만 쓰레기통으로...). 하지만 대중음악/인디음악이라는 전체 범주에서 대중성을 근거로 일종의 양심의 가책을 주입하려는 시도는 결코 정당하지 않다. 그것은 마치 헤비메탈의 정향화된 반사회성을 제외하면 그 너머에 존재하는 다양성, 그리고 그 다양성이 함축하고는 다양한 극단성들은 대중음악의 이름으로 인디음악에서 추방하려는 시도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독립영화에서의 장르영화의 부재처럼 인디음악 내부의 다양성, 대중성에서 극단성 사이의 다양한 스펙트럼은 마치 무의미한 것처럼 인식될 것이다. 대중성 외부의 극단성과 실험은 모두 단순히 외제의 모방으로만 인식될 것이다. 게다가 문제는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문화적 세부사항과 다양성에 대한 지식이나 체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신의 양심과 이미 익숙해진 문화적 코드에 의지하여 대중성, 혹은 대중적인 범위 안에서의 문화와 예술의 추구가 싫지 않게 들릴 것이다. 그러나 독립예술에서 다양성이 존재하려면 대중성과 비대중성의 기준을 폐기해야한다. <워낭소리>만큼이나 <고갈>, 혹은 <네크로맨틱>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음악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런데 외국에 그런 예가 있다는 식의 얘기는 이제 그만하자.
추가1: 한국에서의 대중과 대중성에 관한 담론에는 무엇인가 도덕적인 냄새도 나는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영화나 음악에서의 (외국의) B급 문화들에 대해서 대중 운운하는 평론가들의 무관심과 편협함은 그것이 외제의 저급, 약물 문화라는 생각때문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해본다. 민중이 대중으로 바뀌면서 정치-윤리적 함의가 그대로 고착이 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물론 이는 민중과 대중 모두가 갖고 있는 보편성의 함축과 전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추가2: 대중문화 담론은 철저하게 소비자를 소비자로만 고착화시키는 담론이라는 점도 지적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소비자가 곧 생산자가 되는 잠재성을 전제하는 독립예술과는 최종적으로 화해되기는 힘들 것이다.
# by | 2009/07/22 13:23 | 일지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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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당시 너바나의 네버마인드는 무려 마이클 잭슨의 데인저러스를 끌어내리고 빌보드 1위자리를 차지했습니다.-저는 물론 뼛속까지 마이클 잭슨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