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022

용산참사 농성자들에 대해 중형이 구형되었고 전교조 1차 시국선언 교사들을 검찰이 대부분 기소했다. 우리는 절대로 유신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자명한 현실과 유신으로 시대를 되돌리고자 하는 의지에 충만한 정부 사이의 괴리에서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사실 이 의지의 주체들 자신은 이러한 괴리를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예를 들어 '우리가 하고 싶어도 방송장악 못한다'는 식의 발언). 하지만 가랑비에 옷이 젖는 줄도 모른다고, 이 의지가 조금씩 관철되는 상황(물론 이 의지의 관철은 실제 원하는 목표는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국가와 사회를 망쳐놔버린다는 분명한 효과를 낸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을 그냥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그리고 일단 잊지 말아야 할 것들: 국립대 법인화 반대, 노조전임자 임금 금지 반대, 복수 노조 허용 반대, 공무원 노조 불법화 반대.

그리고 자유주의자들이여 좌측 통행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라!

by sonicluv | 2009/10/22 01:13 | 일지 | 트랙백 | 덧글(0)

091018

우연히 발견한 비디오. DVD로 발매하고 싶은 생각이 있으나 일단 유튜브에 있으므로.



by sonicluv | 2009/10/18 00:15 | 일지 | 트랙백 | 덧글(0)

091015

NOW WHAT의 오프닝을 보고 왔다. 사실은 그 자리에 오는 사람 중에는 별로 아는 사람 많지 않은 관계로 몇몇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나누지만 결국은 오프닝 내내 내 작품이 원하는대로 잘 돌아가는지를 '감시'하다가 들어왔다. 소리는 원하는대로 나왔으나 (주최측이 아닌) 누군가가 작품의 전원을 끄는 바람에 몇번 다시 작동시키는 사태 아닌 사태가 발생했다. 나름 참여작품인 셈인가, 아니면 전시 오프닝 파티를 위해서 준비한 디제이셋이 소음의 크기 때문에 이웃 주민의 항의로 중단된 것과 같은 이치인가. 아니면 둘 다? 작품의 전원 스위치가 관객들에게 마찬가지로 노출되어 있는 빔프로젝터와는 달리 왜 턴테이블은 쉽게 꺼질까? 그냥 듣기 싫은 소리가 난다는 이유때문인가? 어쨌든 전시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고 내 작품 준비가 오래 전에 끝났기 때문에 이번에는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보다 여유있게 감상할 수 있었다. 우선 구민자씨의 작품은 현대 민주주의 정치와 통치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삶(혹은 생체)의 통제 양식으로서의 (감시와 처벌이 아니라) 표준화(혹은 정상화; normalization)가 그것이다. 물론 표준화, 혹은 정상화의 역할은 안전과 안보의 담론과의 연관관계에서 보다 더 잘 드러나기는 하지만. 작가는 통계청이 발표한 표준생활지표(?)에 의거하여 '정확한' 생활을 하고 그 생활을 24시간 촬영하여 보여주는 것이 작품의 전부이지만 나의 평소 관심사 때문에 상당히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하는 자극이 되는 작품이었다. 1871년 파리 꼬뮌에 관한 영화는 매우 흥미로운 것이었는데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꼬뮌과 민주주의를 연관지어서 깊은 생각을 할지는 모를 일이다. 그리고 내 설치물(플라톤이 민주주의를 비유한 '동굴'에서 영감을 얻은...믿거나 말거나)과 소리를 경쟁(?)하는 패쉬 부자리의 복합적인 작품이 2층에 설치되어있다. 잘 찾아서 들어보면 경쟁이 정말로 벌어지고 있다.

by sonicluv | 2009/10/16 21:10 | 일지 | 트랙백 | 덧글(0)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